B(Blank 여백,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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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주천리 단독주택 덧글 0 | 조회 676 | 2017-08-04 13:50:44
관리자  

"이 땅 설계하시나 봅니다.  얼마 전에 저도 집을 지어봐서 잘아는데요. 설계, 진짜 중요하고 잘해야죠.
그래서 말인데요. 여기 설계하실 때 저기 우리 집 조망이나 햇빛 안가리게 잘 좀 고려해 주세요. 나중에 서로 얼굴 붉히는 일 없도록요. 아시겠죠?  땅이 예쁘니까 설계는 잘 나올꺼 같으네요."

바로 옆 2층 (실제로 성토높이를 고려해보면 반지하까지 3개층이 맞겠다) 건물에서 어떤 중년 남자가 급히 내려오더니 부탁하고 싶었던 얘기였는지 다소 부드러운 말투다.  본인도 얼마 전에 집을 지었던 터라 설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자기 집 조망과 햇빛을 잘 고려하라는 부분에선 이기적인 속내가 드러난다.

"아 저 집 주인이시군요.  지금 선생님께서 우려하시는 일이 뭔지 알꺼 같습니다. 안그래도 딱 붙어있는 저 건물때문에 이 땅 건축주와 많은 고민에 빠져 있습니다.  근데 얼굴 붉히는 일에 대해 먼저 말씀 꺼내시네요. 허허~  방금 이 땅보고 예쁜 땅이라 하셨는데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건축주나 설계자 입장에서 이 땅은 상당히 까다롭고 부담스런 땅입니다.  왠줄 아세요? "

"제가 우려하는 일이 뭔지 아신다니 다행입니다. 근데 이 땅이 부담스러운 땅이라고요?...  이처럼 반듯하고 주변이 탁 트여있는 이 좋은 땅을 두고.  글쎄요."

"정확히 얼마 전까지는 좋은 땅이였겠죠. 그러나 지금은 상당히 부담스런 땅이 됐습니다. 왜냐믄요.  그건 바로 선생님께서 쓰신 건축폭력때문에 그렇습니다."

한번 꼬집어 봤다. 먼저 집 지어 살면서 무슨 텃새를 부릴 요량인 것 같아서 일침을 놓은 것이다.

"폭력이요?  그것도 내가?  초면에 말 함부로 하시는데... 내가 무슨 폭력을 썼다는 건지 다시 한번 말해볼래요? "

순간 분위기가 험악해지고 있다. 폭력이라는 단어까지 입에 올리고 싶진 않았으나 얼굴 붉히지 않게 설계 잘 고려하란 얘기에 나도 모르게 발끈해졌다. 사실 이 말 자체를 두고 발끈한 건 아니다. 실제로 이 분은 말그대로 폭력을 행사했기 때문에 그랬다.

"선생님! 한번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세요. 방금 저한테 하신 얘기를 이 땅 주인한테 직접 할 수 있는지 부터요.
저는 여기 이 땅에 집 지으려는 건축주를 대신해서 고민하고 있는 설계자입니다. 그런데 오늘 보니 제가 선생님을 배려해서 설계할 이유가 딱히 없어 보입니다. 왜냐하면 선생님께선 분명 폭력을 쓰셨는데 그걸 모르고 계신 것 같고 더군다나 오히려 얼굴 붉히는 일 만들지 말라고 말씀하시니... 얼굴 붉히는 일은 벌써 벌어져 있고 이 폭력의 최대 피해자는 분명 이쪽인거 같은데요."

또 한번 꼬집었다. 여태 상황판단을 전혀 못했던 것 같아서 제대로 상기시켜줘야 했다.  한편 착한(?) 건축주를 대신해 한마디 꼭 하고 싶었는데  다행히도 그 순간이 제발로 찾아온 것이다.

"얼굴 붉히는 일을 내가 먼저 했다고?..  내 참! 뭐 이런 ~ 내가 무슨 폭력을 썼다는 건지 그것만 말해봐요."

모르는 척 하는 건지 아님 정말 모르는 건지 ... 더 이상의 대화는 무의미해 보였다.  그냥 손가락으로 저기 크게 난 창들을 가리키며 조금 전 폭력이 뭘 의미하는지 짧게 얘기하고 끝내야 했다. 상대가 흥분하고 있으니...

"자 한번 들어 보세요.  폭력에는 물리적인 폭력이나 언어폭력만 있는 게 아닙니다. 다양한 폭력들이 있죠. 분명 건축에도 있습니다. 건축폭력이라고...
지금 이 경우가 폭력에 해당하죠. 선생님건물 저기 큰 창들 안보이세요? 이웃 경계에 바짝 붙혀서 이 땅을 훤히 내려다 보는 창들이 저렇게 많은데요. 그래서 입장 바꿔 한번 생각해보시란 말씀입니다. 분명 상당한 부담을 느끼시게 될테니깐.
남측 마당쪽에도 창이 많던데 굳이 이쪽으로 저렇게 커다란 창들을 냈어야 했냐 이겁니다. 땅도 넓은 데 굳이 창을 내려면 건물 좀 후퇴하고 냈으면 좀 나았을텐데요. 많이 아쉽고 또한 안타깝습니다."

"...그래서... 저 창들을 뭐? ...어쩌라는..."

혹 떼러 갔다가 도리어 하나 더 붙일 것 같았는지 이제는 말끝을 흐린다. 

"이런 부담이 저만 느껴지진 않을텐데요. 아까 설계가 중요하다 라고 말씀하신 분 맞으세요?"

"...ac... 이거 원 ... 대화가 안되네..."

자칫 저 창들이 막힐꺼 같다는 불안한 생각이 들었는지 그냥 뒷모습 보이며 사라진다. 방금 화내며 싸우자고 덤벼들 기세는 다 어디가고...
생각보다 싱겁게 끝났다. 한편으론 씁쓸하다. 서로 해결해야 할 난제가 분명 남아 있는데...

 

 

내 땅을 훤히 내려다 보는 바로 옆집의 커다란 창들...
바로 '건축폭력' 을 휘두르고 있는 것입니다.

건물로 이런 옆집 창을 막으려고 전체를 2층까지 올렸다면 서로 피곤한 일들이 벌어졌을 겁니다.

그래서 낮은 단층으로 옆집 창의 시선을 막지 않고 앙각깊이를 고려하면서 내 마당을 살려내 봅니다. 또한 2층 침실공간은 건물축을 틀면서 프라이버시를 해결하고자 애씁니다.  이렇게 배려했는데 옆집에서도 생각이 있다면 일부분이라도 차면시설을 하겠죠. ㅎ

거창하게 건축문화니 공익추구니 뭐 이런 말까지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우리의 집들이 이웃에 대한 최소한의 배려 내지는 서로 지켜야 할 예의 정도는 고려하고 지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설계할 때 이것만은 조심 (옆 땅을 훤히 내려다보는 창) 했으면 해서 건축폭력 얘기로 짧게(?) 마무리 합니다.

이제는 익명의 아파트가 아닌 이웃을 배려하는 '집'을 그려볼 때입니다... 이웃에 대한 배려!!

건축은 본질(실체)이 아닌 관계속에 성립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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