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lank 여백,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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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주시 효자동 단독주택 덧글 0 | 조회 980 | 2017-08-04 14:14:15
관리자  

"잠깐만요. 지금 설명이 좀 길고 많이 어려워요. 그냥 건축사님이 생각하시기에 ‘집은 간단히 뭐 이런 것이다. 또 설계 특징이나 장점은 뭐 이렇다‘ 라고 짧고 쉽게 말씀해 주시면 안될까요? 실은 알아듣기 좀 힘드네요.“

장황하게 설명하다가 끊겼다. 분명 길다는 이유만은 아닐 것이다. 재미가 있었다면 끊을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런데 ‘짧고 쉽게‘ 란 말은 상당히 신경 쓰인다. 그 어떤 걸 연상하게 하니까. ’싸고 좋게‘, 직업병인가. 음~ 한편, 이 말은 구속이 다양하고 현란한 변화구만을 구사하는 투수에게 그냥 빠른 직구로만 승부하고 마무리하라는 주문으로 들리기도 해서 다소 아쉽다. 지금껏 사구 (포볼, 즉 쓸데없는 군더더기) 가 너무 많았나. 음~~ 볼 판정이 아쉽지만 어쩔 수 없다. 감독(건축주) 요구에 응할 수밖에.

"어이쿠, 제 얘기가 이렇게 길고 재미없는 줄 몰랐습니다. 허허~. 죄송합니다. 근데 짧고 간단하게요? 쉽지 않겠지만 간단히 설명하도록 애써 보겠습니다.“

이젠 건축주 눈치 보며 말해야 하는 입장이 돼버렸다. 왜냐 지금 불펜에서 연습 투구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여기는 아카데미가 아니다. 설계계약을 위한 엄연한 생존게임의 현장이다.
그래서 인타발과 모션을 짧게 가져가면서 조심스레 공을 뿌려본다.

"흔히 집은 '삶을 담는 그릇이다' 라고 많은 분들이 말씀들 하시죠. 저 역시 같은 생각입니다. 그런데 이 삶이라는 것도 재밌습니다. 여러 삶들이 있죠. 인간의 삶, 개의 삶, 늑대들의 삶~,“

입만 열면 길어진다는 걸 잘 안다. 쉽게 설명하려다보니 좀 길어지고 간혹 불필요한 군더더기도 많아서 오해를 좀 사는 편이다. 그러나 집을 간단히 설명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다. 왜냐하면 집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런데 이 건축주, 아까처럼 또 끊어 버리며 지금 이걸 주문하려 하고 있다. 짧게 하라고. 이번 투구가 또 맘에 안차는 지 이번엔 마운드로 향하는 감독의 모습이다. 이제 공 하나 던졌을 뿐인데.

"아 잠시만요. ‘삶을 담는 그릇이다’ 이 말 참 멋지네요. 충분히 알아듣겠는데요. 그런데 삶에도 여러 의미가 담겨있는 건가요? 삶이란 또 어떤 건지 긴 설명을 하려는 거 같은데요. 그냥 좀 짧게 줄여서 말씀해주심 좋겠습니다. 부탁입니다. 너무 길어요. 간단히 삶이란 뭐 이런 것이다. 이렇게요. 그래서 삶은 뭐라는 말씀인가요?“

이젠 직업마저 궁금해진다. 야구감독은 아닌 게 확실하고 혹시 영화감독이나 피디(프로듀서)? 내가 소심한 걸까. 아무튼 이렇게 들린다.
“아! 또 그러네요. 캇~ 카트, 어이 배우님! 지금 대사가 너무 길지 않아요? 그냥 간단히 짧게 하란 말예요. 짧게! 다들 이해하기 쉬운 단어로 아시겠죠? 자~자~ 다시 갑시다. 스땐바이~ 큐~”

이렇게도 들리니 참으로 웃긴 상황이 돼버렸다. 왜냐하면 배우가 준비해 온 기본 분량이 있을 텐데도 그냥 간단히 설명하고 끝내라는 주문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더 허탈한 건 '도덕경 11장'의 운도 못 떼고 끊겼다는 사실이다. 허허~
지금 분량 따질 때는 아닌 것 같고 그냥 감독이 원하는 대로 가는 수밖에 없다. 여기서 토를 다는 건 그냥 강판 당한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안다. 설계 오래하다 보니 건축주 비위 맞추는 게 특기수준이다. 휴~
어쨌든 큐~ 사인은 떨어졌다. 한동안 말 많던 이 배우(?), 약간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다가 기어코 근사한 대사를 준비해 온다. 이번엔 확실히 짧다. 한 줄밖에 안되니...

"삶이란... 음~~... 삶은 달걀입니다."

CF광고 같기도 한 이 소리에 잠시 침묵이 흐른다. 이내 건축주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더니 바로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오케이 사인이다. 야구로 치면 한복판 ‘스뚜~라잌‘...
물론 '삶은 달걀이다' 이 소리에 건축주가 오케이 사인을 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것이다. 왜냐 앞뒤 다 잘라먹었으니까. 지금 이 소리가 허튼소리로 들리지 않는 분명한 이유가 있다.
방금 CF감독(?)이 말 끊은 이유처럼 지금 들려드릴 이 얘기는 다소 장황하고 지루한 설명으로 들릴 수 있다. 그러나 집에 대한 중요한 얘기라 판단되어 잠시 잘라먹은 앞부분 얘기를 꼭 설명하고자 한다. 다행히(?)도 많이 줄여봤다.

...

< 앞부분 >
...
한참을 생각하더니 자신에 찬 얼굴로 입을 연다. 이 건축주, 처음에는 이렇듯 진지했다.
"마당이 집인지 아닌지 이걸 묻는 건가요?... 그야 집은 건물이니까 내부공간이고 반대로 마당은 외부공간이니, 서로 다르다고 봐얄 꺼 같습니다만.. 그래서 마당은 집이 아닌 게 되네요. 흔히 집터와 집, 땅과 집, 마당과 집.. 뭐 이렇게 따로 두고 보지 않나요. 이 질문을 하시는 이유가 되게 궁금해지네요."

‘마당은 집인가’ 란 이 질문은 ‘개집은 집인가’ 와 같이 집에 대한 건축주의 생각을 물어보기 위해 자주 던지는 질문 가운데 하나다. 이 질문을 통해 건축주가 여태 가지고 있던 땅이나 집에 대한 시각을 읽어내고 있음이다. 시각차가 크면 이 간격을 좁혀나가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이런 질문 없이 즉, 마당이나 집에 대한 고민이나 생각들을 들어보지 않는다면 설계자의 색깔을 정확히 전달할 수 없다. 분명 집은 설계자의 색깔이 들어가게 돼있다. 예컨대 건축주는 발라드나 알앤비 또는 랩을 좋아하는데 설계자가 트로트나 뽕짝을 부르고 있다면 어떨까. 마찬가지다. 방금 설계자의 색깔이라고 했는데 이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왜냐하면 건축주입장에서 보면 자칫 집이 뽕짝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서운 얘기지 않은가 ‘뽕짝’. 물론 여기서의 뽕짝은 건축주가 아닌 건축가의 집을 말한다.
언젠가 나의 수많은 스케치들을 만나볼 기회가 생길 것이라 확신한다. 이 스케치에는 일관되고 공통된 하나의 특징을 발견하게 될 텐데 그건 바로 그 어느 스케치에도 마당이 빠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땅이거나 못생긴 땅이더라도...
결국 이 마당을 노래하려고 이 질문 즉, ‘마당은 집인가‘를 던져 본 것이다. 물론 그 다음 질문인 ’개집은 집인가‘는 개집을 노래하려고 의도한 건 아니다. 호호~

"방금 '집은 건물이다' 라고 하셨는데요.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오히려 '건물은 집이다' 라고 바꿔 말하고 싶습니다. 왜냐 집은 건물을 포함한 여러 공간들을 포함하고 있다고 보니까요. 자 조금 긴 얘기일수 있을 텐데요. 중요한 얘기니까 조금 집중해서 들어봐 주세요. 이 얘기 들으시면 제 말뜻 쉽게 이해되실 겁니다."

무슨 수학의 집합문제 같기도 하고 한자나 국어 뜻풀이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암튼 이 예과출신(?)의 이 건축주, 슬슬 머리 아프기 시작한지 손에 이마를 받치고 있다. 그러나 개의치 않는다. 어제 마신 술이 덜 깬 것으로 치부해 버렸으니..

"과거 우리 선조들은 해와 달을 같이 두며 이것을 '밝을 명(明)' 이라 불렀습니다. 참 재밌죠. 왜 해와 달을 두고 밝을 명이라 불렀을까요? 여러 설이 있습니다만 제가 보기엔 이 '명'자는 환하다 할 때의 라이트(light) 가 아니라 '현명하다, 명석하다' 할 때의 브라이트(bright)로 보여 집니다. 이 얘기는 해와 달을 분리해 따로 따로 보지 말고 하나로 봐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죠. 마치 주역의 ‘음효양효’ 나 도가의 ‘유무상생’처럼 하나의 세트로 이 세상을 보라는 우리 선조들의 깊은 뜻이 담겨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이 '명' 이야말로 온 우주나 이 세상을 바라보는 우리 선조들의 시각이라고 봅니다... (중략)"

집이라는 공간을 설명하는데 '명' 이라는 글자를 꺼내며 선조들까지 거들먹거리고 있다. 한참을 열을 내며 신나서 떠들고 있는 자신을 속으로 대견해해 하면서... 이 '명'자 하나로 내부와 외부의 공간개념이나 건물과 건축의 차이 그리고 하우스와 드웰링 뭐 이런 얘기들이 그냥 쭉쭉 잘 뻗어나간다. '나이샷~' , 재탕, 삼탕, 십이지탕까지 엄청 우려먹는다. 이 명자 하나를 놓고선...

그런데 이렇게 잘나가다가 약간 의도된 슬라이스를 내고 있다. 명(明)에서 도(道)로 살짝 핸들을 돌리고 있음이다. 물론 '도를 아십니까~' 할 때의 그 도다. 이젠 유와 무를 설명하느라 또 한참을 떠들고 있다. 근데 집 얘기 하는데 이 동양철학 얘기는 좀 옆길로 샌 느낌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커트 사인이 나올 때까지 마구 달려간다. 왜냐. 도덕경 11장을 이해시켜야 하니까. 호호~

"... 자~ 여기에 자기 존재성은 없지만 다른 걸 가능하게 해주는 영역이 있습니다. 이것을 '무'라고 부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의 구체적인 모습은 없지만 그것 때문에 다른 작용이나 기능이 가능하게 되는 영역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잠깐 도덕경11장을 들려드리겠습니다."

드디어 긴 호흡을 하고 인류 최고의 발명품인 수레바퀴를 굴리려고 하는데, 바로 이때 설명이 길게 느껴졌는지 아님 지루해서인지 이 성격 급한 영화감독, 말을 끊고 이해하기 어렵다며 짧고 간단히 설명해줄 것을 요구해 온 것이다. 방금 수레바퀴얘기는 도덕경11장을 두고 한 얘기인데 이걸 코앞에 두고 끊겼으니 기분 좋을 리 없다. 딴 책도 아닌 바로 도덕경 얘긴데 ... 으으~~ 못내 아쉽다. 그러나 이 기회가 다시 오리라고 기대해보고 ... 흐흐~

.....

이제 다시 돌아와 달걀얘기로 가보자. 한 바퀴 돈 느낌이다. 가운데 얘기 빼면 몇 글자 안 되니 긴 글에 부담을 느끼면 곤란하다. 아참 이건 내가 느끼고 있지. 긴 그에 대한 부담을.. 흐흐~

"방금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셨는데요. 지금 삶은 달걀이라는 말뜻을 이해하신 걸로 봐도 되겠지요. 노른자만 갖고 달걀이 되지 않듯 집도 그렇다는 걸 말씀드리려 했는데요. 이해하신 걸로 보고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이 흰자위에 대한 설명을 또 이어가보겠습니다."

"아! 건물이 노른자고 마당이 흰자라는 뭐 이런 얘기 아닌가요? 그래서 마당도 집이라는 걸 말씀하려는 의도로 이해합니다만. 그렇다면 조금 재밌습니다."

"바로 그렇습니다. '명' 하십니다. 하하~ 이제 물 한잔 하시면서 다시 이어가겠습니다."

이 달걀 한 방으로 주도권(긴 설명)을 되찾아 온 느낌이다. 그렇다. 여기서 이 흰자위는 아시다시피 심오한 노장사상의 요체인 바로 우리의 마당을 말하는 것이다.
중요한 얘기나 한고비 넘겼을 때 이처럼 꼭 목을 축이고 이어간다. 드디어 식빵 들고 흰자위인 마당 속으로 힘들게 끌고 왔다. 근데 왜 식빵이냐고? ... 후후~ 건축주가 방금 잼있다고 하지 않은가.

“자~ 그럼 이제 마당에 대한 설명을 드려보겠습니다. 어떤 분들은 우리의 마당을 조선화의 비워져있는 여백처럼 여백의 공간으로 해석을 하는데 이는 공간의 본질에서 한참 벗어난 얘기입니다. 건축이나 집의 본질은 공간이며 공간의 본질은 쓰임으로 봐야하기 때문이죠. 왜냐하면 마당에선 아주 다양하고 많은 일들이 일어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마당에서는 어떤 일들이 일어나느냐.... 잘 아시죠?. 일일이 언급 안 해도 아실꺼라 믿고.. 마당에 멍석을 깔아두면 실내에서 일어나는 거의 모든 기능들이 갖춰져 있죠. 중요한 건 쓰고는 비워둔다는 점이 다를 뿐. 나중에 기회가 되면 마당의 기능들을 좀 더 자세히 말씀드리겠고 오늘은 간단히 해야겠지요? 호호~”

위험수위를 살짝 넘어가고 있다. 짧게 하겠단 약속을 이번에도 어기면 삼진 처리될 것 같아 상당히 조심스럽다. 그래서 살짝 반응도 살펴본 것이다. 그러나 건축주 아무 말이 없다. 노코멘트는 예스니까 그냥 끈질기게 이어간다. 드디어 도덕경의 깊이까지 도달했다.

“또 우리의 마당은 잘 가꿔진 (여백의 미를 강조한) 일본의 정원과는 분명 다릅니다. 심오한 동양사상과 노장사상이 결집된 요체인 것이죠. 그래서 마당은 여백이 아니라 비움으로 봐야합니다. 항상 쓰고는 비워두는 그릇처럼 우리의 마당도 항상 비워두죠. 이게 바로 마당쇠가 빗자루로 마당을 쓰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노자 도덕경 11장 에 이 비움에 대한 얘기가 수레바퀴나 그릇의 비유를 들어 잘 설명되어 있습니다. 공간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에 대한 해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그 어떤 형태나 구체적인 모습을 취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것 때문에 그 기능이나 작용을 가능하게 해주는 영역이 무(無)이고 비움으로 얘기할 수 있는데 이 비본질적 형태(無)가 바로 마당인 것이다. 이 마당에선 많은 일(有)들이 일어나고 있는데 식사와 휴식 등 내부공간의 연장으로써의 기능뿐만 아니라 행사(잔치), 작업(일터), 모임(소통), 놀이(오락), 건조(저장) 등 집의 중심 기능까지 아우르고 있습니다. 어쩌면 건물을 짓고 난 자투리로써의 마당이 아니라 ‘ㄱ, ㄷ, ㅁ’ 자의 예전 우리의 집처럼 마당을 집의 중심에 두고자 했던 우리 선조들의 지혜가 엿보입니다... (중략) ”

긴 얘기 꺼낸 것 같은데 이 CF감독 조용하다. 커트 외칠 때가 한참 지난 것 같은데... 더 길게 갔다가는 진짜 아웃될 것 같아서 일단 여기서 멈춘다.

“제 얘기가 좀 지루하죠? 아까완 달리 아무 반응이 없으셔서. 머리아프신가봅니다. 아까부터 이마를~”

“아뇨 어제 마신 술 땜에 조금 힘들어서요, 설명은 잘 들었습니다. 생각보다 재밌고 소중한 시간이 됐습니다. 더 하실 말씀 없으시면 ... ”

왜 할 말이 더 없겠는가. 술은 핑계로 밖에는 안 들린다. 그러니 흥미 잃은 사람을 앉혀놓고 무슨 말을 더해 본들 그냥 밑 빠진 독이 될 텐데... 이렇게 마무리 되는 듯 했다.
그런데 인사하려고 잠깐 정리하려는 순간에 이 건축주 이리저리 책장에 꽃인 책들을 보더니 ‘개집도 집인가‘ 라는 책에 눈을 고정한다.

"아까 인간의 삶, 개의 삶 뭐 이런 얘기 하시려 했잖아요. 근데 개의 삶 이건, 뭘 설명하려 하신건지...'여기 개집이 집인가' 책도 보이고 좀 궁금한데요."

성격 급한 이 건축주, 그래도 궁금한 건 못 참겠는지 결국 물어본다. 중요한 건 이 잠깐의 쉼표가 또 다른 물음표가 되는 순간이다.

"아 그건 집과 개집에 대한 공간얘기를 꺼내려 했던 건데요. 선생님께서 단칼에 그것도 두 번이나 끊으셔서, 하하~ ..."

이제 아쉬웠다는 표현을 직설적으로 하고 있다.

"아 아깐 그냥 얘기가 장황해 보였고 진부한 말씀으로 들려서.. 말 끊어서 기분 나쁘셨다면 죄송했습니다. 원래 하시고 싶었던 집과 개집얘기 좀 들려주시면 안 될까요?. 달걀얘기처럼 재밌고 기대되는데요. 근데 개집은 집이 아닌가요? 아! 제가 이처럼 좀 급하고 단순합니다. 하하~"

이번엔 건축주가 눈치를 보고 있다. 듣고는 싶은데 또 길어질까 봐 조심스런 내색도 비추면서...

"아참 여기 꽂힌 이 책 제목은 '개집이~' 가 아니라 '개집도~' 입니다. 그리고 아까 설명드릴 내용은 '개집은~' 입니다. 하하~ 다음번에 찾아오시면 그때 말씀드리죠. 오늘은 컨디션이 안 좋아 보이시니...“

이 건축주의 직업은 의사다. 드라마 낭만닥터에 ‘써어젼‘ 이라고 하던 정형외과 의사. 이 외과의 분들을 여러분 만나봤는데 대체로 성격들이 아주 급하다. 의사들 중에서 군기 빡세기로 유명하다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다급한 수술실 풍경들을 떠올려보면 이해될 것도 같다. 물론 사견이니 오해 없으시길..
중요한 건 이 성격 급한 써어젼, 다시 나를 찾아오는데... 2편에서 계속... 후후~
(2편 내용은 ’개집은 집인가‘에 대한 내용이 주류를 구성하는데 이건 요약해서 잠시 후 댓글로 올려놓을게요. 긴 글 싫어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댓글로.ㅎ 여기도 중요한 내용 - 특히 집의 개념정의 - 이 있으니 놓치지 마시고 꼭 읽어보시길.... 아울러 도덕경 11장 내용도. )


...

자 이제 이 긴 게시글과 또 댓글마저 다 읽으셨다고 보고 괜찮다면 다음의 질문으로 마무리 할까 합니다. 왜냐 글이 자꾸만 길어져서요. 실은 오늘 타이핑이 힘드네요.. 으으~

...자~ 이제 대단원의 막이 내려갑니다.

"마당은 집인가요?” ..

대답이 없군요. 음~ 자~ 집중하시고 다시 물어 보겠습니다.

"마당은 집의 안인가요, 밖인가요?"

 

 

 

 


<뚱뚱한 집과 날씬한 집>
아파트 사시는 분이었는데 애들이 있어서 마당 있는 집으로 가려고 땅을 선택한다. 그런데 맘에 드는 땅치고는 좀 못생겼다. 마름모꼴이라...
향과 주변 조망이 좋아서 선택한 땅이 이정도로 모난 땅인 줄은 몰랐고 이제는 건물이 이 땅을 잘 살려줬으면 하고 미안해하기까지 한다. 아까 그 말 끊던 그 건축주가 맞나싶다...

물론 여러 가설계를 맡겨도 봤지만 하나같이 맘에 들지 않아 했다. 어떠했는지 궁금해서 여러 도면자료들을 받아봤는데 위 스케치는 그 중 가장 맘에 들어 하는 도면을 개략으로 스케치해 본 것이다. 당연 스케치상 위의 뚱뚱한 평면이다. 평면을 들여다보니 짜임새 있게 공간구성은 된 듯 보이나 항상 그러하듯 내 눈에는 그다지... 그냥 땅을 밀어내는 뚱뚱한 아파트평면으로 밖에는 보이지 않는다.

중요한 건 마당이 보이지 않는다. '마당이 없다?' 이건 심각하게 받아들여지는데 마당 있는 집으로 가려고 도심 아파트를 뛰쳐나온 경우라 더욱 그렇다. 그래서 마당이 없는 이유를 들어봤다.

"땅이 원래 작아서이기도 하구요. 끝이 좀 뾰족하죠. 거기다 틀어져 있기도 하고 또 건물에 욕심을 좀 크게 부린 것도 같습니다." 라고 말한다.

그래서 진지한 말투로 물었다.

"그래서 마당을 포기할 건가요?" ...

“포기는 김치 담글 때나 쓰는 말이죠.” 이 말은 하려다 참았다. 호호~

특이한 건 데크가 좀 시원스럽게 쭉 나와 있는데, 그래도 이 데크로는 절대 마당의 쓰임을 대신할 수 없다고 본다. 그래서 메스를 꺼내 땅을 수술대 위에 올려놓고 비우고 또 비워봤다. 이 과정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바로 이것이다.

'사소취대 (捨小取大)' ... 작은 것을 버리고 큰 것을 취하라는 바둑용어다. 이 말은 큰 것을 얻기 위해 과감하게 작은 것을 버릴 줄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1층에 불가피하게 여러 방들을 포기하고 오히려 대마를 살려냈으니 이 싸움의 승자는 다 알 만 할 것이다. 자 드디어 마당이 집의 중심으로 등장한다.

이제 긴 수술(?)을 끝내고 좀 까칠했던 건축주한테 성큼 다가가 본다. 이번엔 손가락 두개를 흔들면서...

“자~ 지금 이게 하나로 보이나요, 둘로 보이나요?”
...

“뭐가요? 손가락이요? ... 아하! .... 이젠 보입니다.
... 해와 달이 이젠 하나로 보여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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