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lank 여백,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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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성시 마정리 단독주택 덧글 0 | 조회 891 | 2017-08-04 14:27:45
관리자  

"방은 세 개가 필요해요. 안방과 아이방, 다른 하나는 손님방으로 이렇게 셋. 거실은 답답하지 않게 큼직하게 해주시고 주방은 거실과 좀 분리된 구조를 좋아해요. 또 주방옆에는 작더라도 꼭 보조주방 넣어주시면 좋겠고.." 

생각하는 집의 규모나 필요한 공간에 대하여 묻자 이런 대답이다.

"중요한 건 면적인데, 반드시 30평미만으로 해주세요. 예산도 빠듯하고 크게 지으면 난방비며 관리하기도 힘드니까요. 또 작게 지어야 나중에 잘 팔릴꺼 같고 아참 드레스룸은 당연히 있어야 합니다."

다소 젊어 보이는 이 건축주, 많은 얘기가 합리적이고 현실적이다. 팔릴 것까지 염두에 두라는 주문을 보면 더욱 그렇다.  한편 '꼭, 반드시, 당연히' 이런 말들은 좀 신경쓰이기도 하다.  설계시 고려되어야할 참조사항이 아니라 꼭 지켜야 할 의무사항처럼 들리기 때문이다. 이런 얘기를 쭉 듣고 있다가 조심스레 입을 열어본다.

"지금 아파트에 사시죠?" 

거의 십중팔구 아파트다. 이제는 집에 관한한 점쟁이가 다돼서 얼굴만 봐도 어디 사는 지 바로 파악이 된다.  딱딱하고 차가운 회색빛의 아파트..
몇해 전부터 집설계만 전문으로 해오고 있다. 설계가 천직이다 보니 이런 유형의 평면구상은 눈 감고도 그릴 정도다. 정말이다. 머릿속으로 그리니...호호~

신경쓰이는 부분은 30평 미만인 규모에 방이 3개여야 한다는 점과 드레스룸이 꼭 필요하다는 사실이다.  잠시 머릿속으로 구상해 보고 스케일자를 대고 단선으로 그려본다. 슥슥~  건축주도 신기한 듯 빠른 손놀림에 놀라는 표정이다.

그런데  방 3개가 잘 나오지 않는다. 그리고 또,
드레스룸 이건 또 어찌할 것인가. 룸이면 방처럼 구성해야 하는데, 구겨넣을 공간조차 아예 안보인다. 머릿속이 좀 복잡해서 드레스룸을 관할, 지배하고 있는 침실을 불러내 직접 상대하게 해봤다. 이 둘의 대화다.

"드레스룸! 내 안에 있는 너는...도대체 누구냐? "

침실은 항상 그러하듯 드레스룸을 예전의 장농정도로 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키니 하는 수 없이 그냥 물어본 것 같다. 그런데...

"실은 나도 그게 궁금했었다. 내가 진짜 룸인지 아니면 너처럼 실인지..."

이 드레스룸, 기다렸다는 듯이 아무도 예상치 못하는 놀라운 답변을 하고 있다. 지금 침실을 향해 맞서서 대들고 있지 않은가.  '너처럼~' 이 대목에선 묘한 전운까지 감돈다. 왜냐하면 항상 침실을 거쳐 구석에 처박혀 있는 존재가 할 얘기는 아니기 때문이다. 마치 장농이나 서랍장이 그 주인인 침실한테 독립적인 주체성을 말하며 대드는 장면같아 놀라울 수 밖에...

반면, 정체성 혼란을 야기시킨 이 발언(룸,실)에 많은 옷들이 방방뛰고 난리가 아니다. '그럼 이제 우리도 여느 방처럼 저 침실 눈치 안보고 목소리 낼 수 있는건가?' 다들 서로 뭐 이런 표정을 지으며 웅성거리고 있다.  암튼 이 발언으로 침실에 갇혀 살아온 설움이 한꺼번에 폭발하는 양상을 보이며 기세를 올리고 있다.

"뭣이라? 내가 잘못들은건가. 장농생활에서 벗어나게 해줬더니 이제 윗전 알기를 뭐같이?...음~ 경계문을 박살 내든지 ...이거 가만둬선 안되겠군."

드레스룸의 이런 반응을 전혀 예상하지 못해서인지 침실도 가만두지 않겠다는 엄포만 놓고 대책마련에 부심이다. 일단은 전면전을 해서라도 분리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레스룸측에 충분히 전달해 놓는다.

한편 드레스룸 일각에선 분리독립에 대한 흥분과는 별개로 침실과의 동선적 관계를 직시해야 한다는 지적으로 냉정을 유지하고는 있다. 그러나 다들 분리독립을 원하고 있어서 침실에 입장전달, 그 방법을 두고 여러 갈래로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드디어 드레스룸이 긴 고민끝에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나섰다.

"우리도 이같은 침실의 엄포에는 심히 유감스럽게 생각한다. 그러나 오랜시절 같이 지내온 침실과 함께해야 한다는 기본 방침에는 변함이 없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단지 침실에 분리독립된 형태이길 바랄 뿐이다."

단호하고 강경한 말투로 이젠 침실앞에 당당히 섰다. 이건 명백한 독립선언이다. 이제 대국민 담화문을 발표하려는지 쪽지를 꺼내 조심스럽게 읽어 내려간다. 이번엔 좀전과 다르게 정중한 어조다. 드레스룸의 입장을 잠깐 들어보자.

"여기 안방에 부속된 작은 공간이 하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아파트 안방에 딸린 드레스룸이 그것입니다. 이 공간은 항상 안방에서만 사용되어질 것이고 다른 가족이나 외부사람들은 쓸 수 없는 공간입니다. 바로 안방의 전유물이죠.
반면 안방에서도 쓸 수 있지만 복도에서 별도로 출입할 수 있는 옷방이 있다고 하면 이 옷방은 여러 목적으로 쓰여질 가능성이 있겠죠. 만약 외부에서 묵어갈 손님이 찾아온다면 손님방으로 내어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이 옷방은 그냥 방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드레스룸은 안방에 갇혀있어서 독립된 방으로써의 쓰임이 불가능해지죠...지금 상황이 좋지 않습니다.
이처럼 30평이라는 한정된 공간안에서 쓰임있는 공간을 가져가려면요. 카멜레온같은 이 옷방의 컨셉이 필요해 보이는 이유입니다. 그렇다고 완전 분리를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로 안방에서 '따로 또 같이'...(중략)"

드레스룸의 이 현란한 드리블에 침실이 상당히 당황해 하고 있고 기분나쁜 기색도 뚜렷하다. 글 마지막 '따로 또 같이'란 이 명분은 연방제로 가자는 얘기처럼 들리기도 했다. 오랜 세월 속국으로 있었던 드레스룸의 연방제 방안을 침실이 받아들일리 만무하다. 그러나 한자 한자 뜯어놓고 보면 일리있다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처해진 현 상황을 직시하라는 것과 이에 쓰임있는 공간 얘기로 논리를 펴고 있다. 특히 침실을 직접 건드리지 않고 대타로 안방을 끌어들이는 대목에선 노련함까지 묻어난다. 이제 반대할 명분도 약해졌다. 침실도 간단히 대국민성명을 통해 이 옷방의 독립수용 여부를 이웃 안방얘기로 치부해 버리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하하~ (안방과 옷방, 침실과 드레스룸..)

머릿속을 빠져나와 다시 건축주와 마주한다. 안방이 옷방의 독립을 인정했던 것처럼 이 젊은 건축주도 옷방 얘기를 듣고는 충분히 이해한다는 표정이다. 대신 단서는 깔고 있다.

"방금 얘기는 방 하나를 옷방으로 대신하겠다는 걸로 들리는데요. 그럼 거실이나 다른 공간들은 잘 빠지겠죠. 그렇게 진행해주시고 단, 목조주택의 장점을 최대한 살려서 잘 계획해주세요"

직업은 못 속인다. '잘 빠지게?'  아파트와 밀접한 신분임에 틀림없다.  다른 데선 방 3개 잘 빼는데  너는 왜 못 빼느냐 뭐 이런 표정도 읽어내려간다. 잘 빼는 쪽으로 가면 됐을텐데 이쪽으로 온 걸 보면 방 3개 구조가 맘에 들지 않았던 모양이다. 그래서 똑같이 쓰리룸 전법을 구사한다는 건 서로 시간 낭비일 것이다. 지금 대안이 절실히 필요해서 찾아온 건축주이기에... 색다른 방법으로 접근해 볼 생각이다. 아예 방 1개로 갈 파격적인 생각도 갖고 있다. 또 '목조의 장점을~' 이 부분은 뭐 그리 까다롭지 않다. 목조 웜루프지붕 하나만으로도.. (음~ 자기과시를 하면 안되지 ...호호)

한편, 드레스룸과 옷방의 차이를 끄집어 낸 것은 어쩌면 어떤 고정된 틀이나 선입견 같은 걸 깨고 싶기도 했고 과거 우리 선조들이 얘기하는 공간(이 공간얘기는 길어서 천천히~)을 설명하기 위한 숨은 의도도 깔려있다.
한걸음 더 나아가보면 드레스룸과 옷방의 차이가 지금의 주택들과 과거 우리의 집의 차이로까지 보인다는 뜻이기도 하다.  비약이 좀 심할 수도 있겠지만 그래도 이 옷방 하나로 우리의 공간을 일부 설명하기엔 충분해 보인다. 아래 스케치에서 옷방 구성을 유심히 보기 바란다. 안방에서 완전히 벗어난 우리 옷방의 형태를...
드디어 미국과 중국에 당당히 맞서... 엥?

그래도 이 건축주, 30평이라는 면적에서 방3개가 나오지 못한다는 건 여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다. 거실과 주방을 너무 크게 뺐나(?) 음~
아파트와의 면적싸움을 하고 싶진 않았는데 결국...왜냐 법정(?)면적에서 불리한 내용(불편한 진실)을 밝혀야 하니까. 이것도 외단열을 했을때 그렇다. 내단열인 경우 끔찍하다. 동일면적대비 차이가 극명히 드러나므로.

《아파트와의 전쟁 - 그 첫번째 : 다락결투》

30평형대(공급면적 30평~35평) 아파트는 전용면적이 국민주택규모 미만이라서 25.7평미만(85m2)이다. 그래서 30평미만이면 위에 열거한 공간들을 충분히 풀고도 남아 보인다.

그러나 아파트와 일반주택은 면적산정기준이 틀리고 (아파트는 안목치수, 즉 벽체를 뺀 실사용공간치수를 기준함) 중요한 건 아파트에는 발코니라는 아주 강력한 비밀병기가 숨어 있다.  서비스면적이란 미명하에 1.5m의 긴 칼(어떤 건 화단을 빌미로 2m가 넘는 것도 있다.)을 찬 아파트와의 싸움은 애시당초 성립 자체가 되지 않는다.
반면 우리에겐 넓직한 데크와 마당이 있지 않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건 외부잖아' 라고 해버리면 끝이다. 도저히 이 면적싸움에서 이겨낼 재간이 없는 듯하다.

이 아파트와의 불리한 면적싸움에서 밀리고 있던 중 지붕을 들여다 보다가 중요한 단서를 하나 포착한다.  우리에게도 이런 강력한 비밀병기가 숨어 있다는 사실을... 그건 바로~~ (복면가왕버젼)  '다락' 이다.  이 숨어있는 다락의 등장으로 이제 전세가 뒤바꼈다.

 

 

《다락 이야기》

다락은 건축법상 지붕 속 공간입니다... 그래서 화장실이며 주방 등은 구성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층고(구조체간 높이) 또한 1.8m(경사지붕인 경우 가중평균높이)이하로 제약이 따르죠...스케치보시면 다락 가중평균높이 계산식이 있습니다. 천천히 따라 계산해보세요. 생각보다 쉬울거예요. 계산식은 '입방체면적/평면적' 입니다. 1.8m까지 이빠이~ 아시죠? 아 쓰마미셍 ... 호호~  (이 경우 구조체에 단열을 적용하는 목조주택이 비교적 유리합니다.)
한편, 모임지붕은 아름답지만 큰 단점으로 다락구성이 용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즘 짓는 단독주택들은 시공 및 경제성까지 고려, 거의가 박공(맞배)지붕의 형태를 취하고 있죠.

이 집은 면적(공사비)부담 때문에 1층은 30평미만으로 하고 부족한 방은 다락으로 해결해 보고자 의도했습니다. 1층에 방3개를 마련하려면 잘게 땅따먹기 하거나 아파트처럼 확장형평면 적용하면 되겠지만, 그렇게 하고 싶진 않군요. 왜냐 아파트와의 싸움에서 패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후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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