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lank 여백,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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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시 도수리 전원주택 덧글 0 | 조회 796 | 2017-09-07 20:06:29
관리자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 한다’ 는 속담이 있다.

두 가지 뜻이 담겨있는데 욕심이 지나치면 둘 다 잃게 된다는 뜻도 있고, 도망칠 때 서로 다르게 달아나서 그만큼 잡기 어렵다는 뜻도 있다. 대지현황에서 향과 조망(개방감)이 서로 다르게 나타날 때 후자의 경우를 빗대어 이 표현을 즐겨 쓴다.

이 대지가 그랬다. ‘향’과 ‘조망’이라는 두 놈이 마치 두 마리 토끼처럼 다른 방향으로 달아나고 있는 모습이다. 위쪽으로 탁 트인 천을 끼고 있는데 말 그대로 대장관(Grand View)이다...그런데 이게 하필 북향이라니...

.......

"아니, 탁 트인 전망이 북쪽인 건 알겠는데요. 그래도 그쪽으로 거실이며 큰 창 내주세요. 향도 중요하지만 이 열린 조망도 도저히 포기할 순 없겠네요."

항상 남향으로 집을 지어야 한다고 노래 부른다. 그런데 이 대원칙(?)이 한 순간에 무너질 때가 있다. 지금이 그 순간인데 또 다른 무림의 고수, 바로 '조망(View)' 의 등장을 알리는 소리다.
그 어떤 설득이나 논리도 이 조망 앞에선 속수무책으로 쓰러진다. 지금은 태양계 최고의 지존인 이 '남향(Sun)' 을 상대로 칼을 겨누고 있으니...
'19금이라 좀 부담이 됩니다.' 이러면 '그럼 그리로 더 큰 창 내주세요.' 라고 할 판이다. 이 숫자에서 연상되듯 이 자연경관이 주는 긴장감과 시각적 쾌감은 분명 향을 압도하고 있다.

"아~ 조망을 완전 포기하겠다는 건 아니구요. 조망만 고려하다보면 실들이 북향이라 춥다는 걸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헌데 지금 말씀은 향보다 조망을 우선 고려하라는 얘기로도 들리는군요. "

벌써 세 번째 대안이다. 이 조망이란 놈이 향과 반대로 틀어져 있어서 지금 딜레마다. 조망(View)을 위해 남향(Sun)을 포기하는 일이 생기면 이 또한 끔찍하지 않은가. 그래서 자주 던지는 이야기 하나로 속내를 정확히 떠봤다. 잘 아는(?) '두 여자' 이야기다.

"여기 두 여자가 있습니다. 예쁜 여자와 음식 잘하는 여자... 근데 이 둘을 모두 겸비한 여자는 잘 없습니다. 마치 산 좋고 물 좋은 데 없듯이요.
그런데 굳이 둘 중 하나만을 고르라면 저는 음식 잘하는 여자(향)를 택하겠습니다. 왜냐 평생이 즐거우니까요. 하하~"

이제 주무기인 묵직한 돌직구를 한가운데에 던질 타이밍이다. ㅎ

"따뜻하고 쾌적한 집을 추구해야 한다고 봅니다... 예쁜 건 오래가지 않습니다."

방금 이 얘기는 집은 쾌감이 아니라 쾌적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인데, '멋 부리다가는 얼어 죽을 수 있습니다.' 라고 강하게 어필하는 것이다. 지금이 아주 추운 한겨울이었다면 이 직설적인 표현, 즉 멋부림(조망)은 더 적절했을 텐데... 아무튼 최고 구속이 찍힐 정도로 향에 대해 대단한 집착이다.

그런데 이 건축주, 이 묵직한 초강속구를 그 자리에서 바로 받아쳐낸다. 물론 강타자라 예상은 했지만...

"예쁘면 오래 못 간다? 글쎄요. 제 생각엔 오히려 못생기면 아예 못 간다고 보는데요...허허~
여러 차례 대안 마련에 힘 드신 줄 알지만 예쁘고 요리 잘하는 여자, 꼭 있을 겁니다. 다시 한 번 찾아주시면 고맙겠습니다. 물론 예쁜 여자가 우선입니다..."

고수는 고수를 알아보는 법... 여러 차례 '향'을 고집해서 화 낼만도 한데 여전히 말투는 부드럽다. 아마 이렇게 둘 다를 겸비한 여자, 꼭 찾아 줄 꺼라 확신해서이겠지... 그런데 이런 여자가 존재하기는 하는 걸까. ㅎ

열이면 열, 예쁜 여자 마다할 사람 어디 있겠냐마는 그래도 살다 보면 결국 여자(집)는 멋(조망)이 아니라 맛(남향)이라는 걸 알게 될 텐데... 요리하는 한 사람(?)으로서 그저 안타까울 뿐이다. 이대로 손 한번 제대로 못쓰고 조망의 승리로 싱겁게 끝나버리는 건 아닌지 암울하기까지 하다. 태양이 지게 생겼으니. 엥?

저 멀리서 선혈 자욱이 낭자하다. 크게 원을 그리며 뒷걸음 치는 남향(Sun)이 결국 뜨거운 피를 토하며 자세를 낮추고 있다. 결국 눈물을 머금고 이 향을 포기하는 수밖에... 예전처럼 고집 피워 이로울 게 없다고 지나온 과거가 나를 일깨운 것이다.

이 싸움은 처음부터 예견된 승부였다. 향과 조망 중 어떤 걸 우선해야 할까. 그야 당연 예쁜 여자(조망)? ㅎ 그렇다면 음식 잘하는 여자는? 여러분이라면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자못 궁금해진다. 이제 북향으로 치닫는 이 싸움에 누군가 새로운 흙먼지를 일으키길 기대해보며...

 

 


.......

WARNING !! (59금)

아래 ‘달을 품은 집‘ ... 이 기나긴 글은 상당한 주의를 요합니다. 한번 발을 담그시면 빠져나오기 힘든 중독성과 도중에 비약이 심한 부분에서는 욕설 또는 짜증 섞인 반응 등의 맹독성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59세 이상이신 분들은 각별한 주의가 필요합니다. 난시 및 퇴행성 근시, 약시를 동반하는 등 각종 시력저하가 염려되는 글이라 그렇습니다. 이런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본 글 내용이 궁금하시다면 19세 미만의 어린 자녀분들에게 도움을 청해 이야기로 들어보시길 권합니다. 자 그럼 불을 끄겠습니다.


《 달을 품은 집... 》

첫 번째 토끼사냥 (초기 계획안-아래 댓글 스케치 참조)은 항상 그러하듯 마당과 향이라는 관점에서 시작한다. 땅이 상당히 작은데, 70평 정도라서 규모 있는 마당을 구성하기에 다소 힘들어 보인다. 그래서 볕이 잘 드는 남쪽으로 도로측 개방감까지 고려하여 건물과 마당 모두 남향으로 배치해본다. 물론 날씬한 평면으로 외부공간을 살리는 데 주안점을 뒀다. 그런데 아주 초보적인 실수를 저지른다. 나머지 한 마리(조망)가 완전히 달아나 버렸기 때문이다.

방금 이 초기안의 문제는 북측 열린 조망과 건물 및 마당의 프라이버시(privacy)를 제대로 살려내지 못했다는 점이다. 특히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마당이다. 이 마당은 파자마 입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나만의 안마당으로 풀어내야 하는데, 아무리 차폐식수를 많이 심는다 한들, 이 남쪽마당은 태생적인 한계를 곧 드러내고 만다. 바로 '프라이버시' 때문이다. 어느 집이든 이웃과 맞대면서 생기는 문제로 이 프라이버시는 항상 골칫거리로 등장한다.
이래저래 두 가지 큰 문제(조망과 마당)로 새로운 대안마련에 나설 수밖에... (지금 이 이야기는 남향으로 계획한 아래 댓글 스케치를 두고 하는 말입니다.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합니다. 안 그럼 한 순간에 여태 읽은 거 모두 잃을 수 있습니다. 호호~)

이제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묘안을 구상해 보는데 쉽지 않다. 그래서 일단 마당의 프라이버시 부터 해결해 놓고 다른 걸 다루기로 맘먹는다. 조망 얘기하다말고 왜 프라이버시냐 하겠다. 그건 내부의 적을 먼저 소탕하고 외부 적과 마주해야 한다는 손자의 가르침(원교근공)을 따를 뿐 별다른 이유는 없다. ㅎ

........

이제 이 내부의 적 프라이버시(privacy)를 한번 불러본다.
적이라는 표현을 한 걸 보면 알 텐데, 이건 승자의 입장이니 당연 '남향'을 깔아뭉갠 북측 조망 (이하 ’북조‘)이 불러내는 것이다. 이내 북조가 프라이버시 (이하 '프라이') 에게 강한 불만을 털어낸다. 둘 사이가 틀어져 보이는 데, 지금 이 둘의 대화를 들어보면 금방 알게 된다.

"네 이놈 프라이!, 네놈 때문에 매번 '남향' 에게 밀렸는데 오늘은 단단히 벼르고 왔다... '탁 트인 시야~' ... 이 결정적인 한방에 너도 '남향'처럼 어쩔 도리가 없는 것인가. 아니라면 쥐새끼처럼 숨어 있지 말고 어서 나와 저번처럼 '이웃과 건축폭력이 어떻고, 침해사실이 어떻고' 그 잘난 주둥이를 또 놀려보란 말이다. 바싹 튀겨 저 멀리 날려 보내기 전에... 어서~ ! "

여태 북조가 남향에게 계속 밀린 이유가 프라이 때문도 있었다.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단순히 남향(Sun)이 지닌 따뜻한 햇볕, 즉 일사취득이나 열손실(이하 '에너지 세력') 때문에 이 북조가 계속 깨진 게 아니라는 걸 알게 해준다. 매번 조망이 수면위로 떠오르면 즉, 전망이나 개방감 등을 언급하면 그 배후에는 언제나 에너지 세력과 연합해 사정없이 눌러버린 프라이가 있었던 것이다.

반면 그동안 이웃과의 배려나 관계를 회복하는 데 큰 노력을 해 온 프라이 입장에선 당황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남향이나 에너지 세력들과는 다시 힘을 뭉치기도 이미 늦은 것 같고... 그런데, 이런 예상을 뒤엎고 프라이가 침묵을 깨고 무거운 몸을 일으켜 세운다. 아마 풀네임(full name)을 부르지 않고 후라이(fry)를 연상하게 만든 후 튀겨버리겠다는 이 말에 단단히 화가 난 것임에 틀림없다.

"아까부터 나를 내부의 적이라 부르는데 그건 매우 위험한 발언이다. 난 그냥 내 길을 간 것일 뿐 그 어떤 사익이나 편향된 시각은 없었다고 생각한다. 뭐가 내부의 적인가, 그럼 외부의 적은 북조, 널 칭하는 것인가. 그리고 내 이름이 가벼워 보이고 웃긴다는 건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렇다고 튀겨낸다? 이 무슨 무례냐. 상당히 불쾌하다. 나는 그대가 튀겨낼 정도로 결코 가벼운 존재가 아니다. 그냥 파자마차림으로 마당을 편하게 다니게 해달라는.. 뭐 이런 현실적인 해법을 묻는 게 오히려 바람직하지 않은가. 그리고 놈이 뭔가? 점잖지 못하게..."

프라이가 오히려 일침을 놓는다. 상당한 자존감이 엿보인다. 이전 옷방처럼 이 프라이도 하나의 독립된 성격의 설계요구조건을 담아내지 못한다는 점에서는... 그러나 이전 그 옷방(이전 글 참조)과는 존재감이나 대응방식이 확연히 다른 것 같다. 한편 이웃과의 잦은 마찰에서 보듯 싸움꾼다운 행보가 이어진다. 오히려 북조의 점잖지 못한 발언을 질타하고 있지 않은가.

"하하 역시 프라이다운 말솜씨군... 좋다. 내 굳이 너를 쳐 얻을 게 없으니 지금은 칼을 거두겠다. 대신 마당에 물의를 일으킨 책임은 물어 마땅하니 그 해결방안은 가져오길 바란다. 방금 파자마, 마당, 현실적인 해법, 어쩌구 했는데 뭔가 복안이 있는 것도 같으니. 만약 가져오지 못할 시엔 어쩔 수 없다. '북향'을 끌어들일 수밖에... 이 북향이 뭘 의미하는지는 똑똑하니 이해할 꺼라 본다. 내 앞에 무릎 꿇은 이 '남향'의 운명은 이제 프라이 너에게 달렸다고 봐도 과히 틀리지 않는구나."

처음엔 남향과 북조의 싸움이 북조와 프라이와의 싸움으로 번지는 것으로 보였으나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 북조는 프라이를 통해 이 어려운 난국을 타개하려는 의도를 드러내고 있음이다. (지금 북조 이 대명 헷갈리시면 안됩니다. 북측 조망을 줄여 쓴 말이고 이 대화의 핵심 등장인물입니다. ㅎ)

그냥 북향으로 강행하면 되는데 프라이에게 후라이 까는 걸 보면 나중에 일어날 후환(남향을 제거한 일)까지 염두에 두고 있으며 또한 꼭 대안을 가져오길 바란다는 뜻을 내비춰 프라이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건 꼭 삼국지의 조조가 제갈량을 대하는 장면 같기도 하다. 대담한 조조 앞에 선 제갈량, 결국 현 상황만 놓고 보면 프라이의 묘안만이 북향을 막아낼 대안으로 보인다.

"내가 남향 편에 서서 그 목소리에 힘을 실어 준 건 사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건 오로지 모든 집이 같은 향으로 배치될 때 내가 힘을 발휘하니 그렇게 한 것일 뿐 꼭 남향이라 그런 건 아니니 오해 없이 받아주길 바란다. 잠깐 살펴보니 '남향'은 관절이 완전히 나가서 충격을 흡수할 수 없을 정도로 망가져 있다. 구태여 '북향'을 끌어들여 이이제이(오랑캐를 들여 오랑캐를 치다)할 이유도 없어 보이는데.."

잘 해석해 보면 북향의 개입만은 막고자 하는 프라이의 입장이다. 에너지도 다 떨어진 남향을 완전 제거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거다. 싹을 자르지 말고 후일을 도모하고자 하는 무서운 내용도 깔려있다. 물론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내가 보기엔 그렇다. 한편, 프라이는 남향 애찬론자도 아니었던 것 같다. 계속 들어보자.

"이 세상의 모든 건 본질이 아니라 관계로 되어 있다. 남과 북은 본래 하나지. 남이 약해지면 당연 북이 강한 건 자연의 이치이니 이걸 극복하려 애쓰진 않겠다. 한편, 꽃이 떨어져야 열매를 맺는 법... 남향이 빛을 잃으니 희한하게도 내 눈앞에 이게 선명히 드러나는구나. 바로 파자마 마당... "

남향이 약해지면 당연 조망이 드러날 줄 알았는데 오히려 마당으로 무게중심을 이동하고 있다. 재밌는 건 '파자마 마당' 이다. 향을 크게 고려치 않으면 역으로 마당의 새로운 배치가 가능한 듯 보인다.

"파자마 마당이라 ... 음~ 속옷 마당? ... 이게 헷갈리게... 좋은 한글을 놔두고 ... 앗! 나도... 헤헤~ 나도 프라이 너를 '사생활' 또는 '사삿일'로 불러주마. 그건 그렇고 이 파자마 마당이 문제를 풀어줄 핵심 열쇠라고 보는 건가. 도대체 파자마 마당이 뭔가? "

"흠~ 번역을 그렇게 하면 안 되지. 파자마는 그냥 안마당으로 해두면 되는 것을... 앞으로 머리 나쁜 북조 너를 위해 쉽게 설명하도록 해보지. 우리가 전망, 그러면 꼭 거실이나 안방에서의 전망을 떠올린다. 집의 중심공간이라 그런 것 같은데 그렇다면 집의 중심인 마당은 이에 해당되지 않는가 이 말이다. 다시 말해서 마당은 조망권이 없냐. 뭐 이런 얘기지.... 잘 한번 생각해보라 "

방금 놀라운 프라이의 설명이다. 마당의 조망권을 건드려 마당을 거실과 동일시하고 있다. 이 때 프라이가 종이를 꺼내 건물배치며 삼디(?)스케치를 놀라운 속도로 그려내고 있다. 근데 특이한 건 이웃 쪽으로 창이 없다. 프라이다운 발상이다.

“(계속) 남향과 북조!... 너희 둘은 항상 건물배치나 평면을 놓고 첨예한 대립각을 세우는 데, 내가 보기엔 이런 향이나 전망보다 더 중요한 게 있는데 이걸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되묻게 된다. 이걸 먼저 푼 다음 싸워도 늦지 않아 보이는데. 집은 공간(空間)이다. 이 대전제를 부정하진 않겠지. 그럼 이 공간의 본질은 무엇인가. 바로 쓰임이라고 누누이 밝혔다. 그래서 이제 공간으로 넘어가야 한다. 이제 향이나 전망에서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공간이 우선이다. 이게 해결 안 되면 향이며 전망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프라이가 공간론을 꺼내 북조에게 따끔한 일침을 놓고 있는데 이젠 ‘남향’은 물론 ‘가로’ 며 ‘조화’며 ‘자연’이며 ‘도심’ 이며 ‘환경’ 이며 ‘머니’, ‘문화, 예술, 기술’ 등등 심지어는 ‘지관, 풍수‘까지 긴장을 하고 있다. 왜냐면 쓰임 있는 공간을 다루니까. 다소 이해하기 어려울 수 있겠으나 이 공간론은 인문적 깊이도 있고 집의 공간배치에 대한 설득력도 상당하다. 그러나 지금의 이 토끼사냥(?)과는 제법 거리가 있어 보이는데...

“아 ~ 도중에 말 끊어서 미안한데 지금 설명이 무지 길고 지루함이 몰려온다. 방향(슬라이스)도 그렇고 지금 얘기는 ’두 마리 토끼’를 어떻게 잡아내느냐를 물어본 것이다...”

“뭘 궁금해 하는가. 이 스케치를 보라. 건물이 마당을 감싸 안은 배치를 취하고 있다. 마당 앞 이웃 건물 벽면은 창이 없다. 이로 인해 완전 에워싸인 공간이 형성되는데 마치 내부처럼도 느껴진다. 지붕을 덮으면 바로 실내가 되니..."

얼마 전 건축폭력얘기 꺼낸 걸 기억할 것이다. 프라이가 겨냥하고 있는 건 이웃에 대한 배려로 창을 없앴는데 이 벽면이 주는 공간 심리적 작용을 말하는 것이다. 이 얘기는 다소 어려울 수 있어서 프라이의 부연설명을 정리해봤다.

향에 순응해 가로로 긴 형태의 따뜻한 건물은 어렵게 됐지만 건물이 마당을 품어 내외부의 상호 공간관입으로 형성되는 ‘내부공간의 외부화‘ 와 이웃 건물이나 외벽의 에워쌈을 통해 ’외부공간의 내부화‘로 공간을 중첩시킨다. 다시 말해 내부는 가변적인 공간구성이나 향후 증축에 대한 확장성은 물론 마당과의 유기적인 연계를 통해 하나의 공간으로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외부도 개방감과 조망의 확보는 물론 닫힌 마당의 구성으로 내부를 지향하고 있다고 보면 좋겠다.

장황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문장들로 가득하다. 이걸 또 눈치 챘는지 프라이의 설명이 빨라진다.

“외부로 향하는 실내공간과 내부처럼 진화하는 마당... 바로 이 두 공간은 서로 구분, 한정, 경계 짓지 않았던 과거 우리의 'ㄷ' 자 'ㅁ' 자 집들에서 보여지 듯 과거 우리의 안마당과 분명 닮아 있다. 집의 중심공간이면서 그 역할도 완벽히 수행했었던 우리의 안마당, 그렇다! 분명 하나인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마당을 다시 한 번 주목해보자. 왜냐?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 할 게 아닌가...”

드디어 나왔다. 두 마리 토끼... 슬라이스를 낸 게 아니었다. 그런데 새삼스럽게 마당의 주목을 언급한다. 방금 얘기를 더듬어 보자. 외부와 연속적으로 관입된 실내공간과 건물로 에워싸인 외부마당을 분리해서 보지 말고 하나로 보라는 의미심장한 말이 눈에 들어온다.

"역시 프라이야. 제갈량이 조조 편에 섰더라면 삼국지란 이야기는 없었을 것이라 했다. 내 너를 일찍 보지 못한 걸 지금 후회하고 있을 정도이니. 정말 대단하다. 프라이버시“

이제 북조가 프라이를 극찬하고 나섰다. 풀 네임을 다 불러주고 있으니.. 그런데 북조는 방금 프라이가 한 이 말을 이해하기는 한 걸까... 이상을 잠깐 정리하고 마무리 장면으로 이어가보자. 내용이 장황하고 길면 길수록 줄이고 비우면서 새로 시작하는 버릇이 있다. 실은 워낙 길어 글 쓴 본인도 헷갈려서다. ㅎ

.......

서두의 두 마리 토끼사냥은 남측의 향(남향)과 북측의 조망(북조)이라는 상반된 자연적 요구조건을 모두 담아낼 수 있는 방법론을 묻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남향보다 비교우위에 있던 북조가 북향을 끌어들이지 않고 이를 해결하고자 관계론의 대가인 프라이에게 그 방법을 청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이 프라이가 공간, 특히 닫힌 안마당에서 그 실마리를 풀어내는데... 이 닫힌 내부 마당 (중정(中庭, Courtyard -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 을 통해 세상(공간)을 재해석한다.
많은 이들처럼 북조는 이 세상을 물리적인 요소(향, 조망)를 통해 이 세상을 본질적으로만 바라봤지만 오랫동안 이웃과의 관계를 중시해 온 프라이는 공간 상호간의 관계나 건물 간 사이(間)의 작용에 주목했고 결국 건물과 건물이 만들어내는 사이공간에서 향과 조망까지 해결하고자 했다. 한정된 물리적 용적의 초월 ! 이걸 말하고자 했던 건 아닐까...
한편, 프라이가 이 해석에 많은 아쉬움이 남았는지 이번엔 남향과 북조 둘 다 불러낸다.

“쉽게 설명하려다 보니 말이 상당히 길어졌군. 결론을 빠트려서 다시 너희 둘을 부른 것이니 긴장하지 않아도 된다. 정확한 이해를 위해 간추려 정리해 봤다. 다음을 보라”

프라이가 준비된 쪽지를 꺼내 이 둘에게 보여준다. 위 스케치에 대한 전반적인 설명을 다루고 있다.
마당에서의 향과 조망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

해 (건물) ; Open (외부화)
- 외부와는 수직⋅수평적으로 서로 관입됨.
- 향후 증축과 확장성 고려 (테라스 및 옥상)

달 (마당) ; Close (내부화)
- 주변 건물에 의해 내부처럼 위요됨 (닫힘)
- 남, 북으로 하나의 축 형성 (향과 조망)
.......

“여기서 눈여겨 볼 건 이 해(日)와 달(月)은 서로 떨어져 있거나 분리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전에도 길게 설명했는데 기억날지 모르겠군. 내가 사랑하는 '명(明)자 얘기를 ... 그래서 집은 해와 달의 공간이라고... 기억한다면 이제 보일 것이다. 공간은 물론 향과 조망을 아우르는 이 마당의 연결고리를 .... 이제 이런 집을 이름 하여 '달을 품은 집' 으로 하겠다.”

북측 조망을 확보하기 위해 잃어버렸던 남쪽 향을 이 마당이 대신 찾아주고 있다는 프라이의 마지막 언급은 생략한다. 서두에 고민했던 두 마리 토끼 즉, 향과 조망을 이 마당이 제대로 담아내고 있다는 쉬운 설명이니까. 결국 해(건물)가 아니라 달(마당)이 날렵한 토끼들을 잡아내는 순간이다. 누가 잡아내면 어떠한가. 어차피 한 몸(明)인데...
.......

드디어 건축주에게 소개할 시간이 왔다.

“예쁘고 요리 잘하는 여자, 힘들게 찾았으니 시간내 방문해 주시죠.”

“아 고생하셨어요. 근데 죄송한데요. 저번에 빠트린 게 하나 있는데 이걸 어쩌죠”

“....?....”

“그 여자, 성격은요. 성격은 어때요? ” ... 후후~


부연 : 본 프로젝은 15세대의 단지계획인데 남고북저(南高北低)의 경사지여서 남향만을 얘기할 수 없었다는 점 추가로 말씀드립니다. 오히려 단지 전체(물론 마당포함) 에 북측조망의 길을 열어주려는 계획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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