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 지을 때 산고의 고통이 좀 따랐는데 아마 첫째(?) 라서 그랬던 것 같다. 설계 당시 건물형태에 사선을 적용해서 힘들었던 장면들이 가끔씩 떠오른다. 이때만 해도 사선을 참 좋아했었지... 벌써 10년이란 시간이 흘렀고 이 집 또한 많은 변화를 겪었다.
첨에는 괴이(Grotesque)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는데 아마도 강렬한 사선구도에다가 복잡해 보이는 건물형태 때문에 그랬을 것이다. 한번은 공사중에 어떤 일행 몇이서 다가와 물어본다. (대부분 첫마디는 이럴 것 같다.)
"대체 이 건물, 용도가 뭐예요?"
호기심을 못 참고 물어보는데 아마 가벼운 내기정도 한 모양이다.
"그냥 저희가 사는 집입니더."... 주인의 짧은 답이다.
그냥 집이다? ... 뭐 이런 심심한 대답을...ㅎ 답을 들었으니 그냥 돌아서야 하는데, 몇몇 사람들은 주인허락 없이 빗장을 풀고 경계를 넘어선다. 아마 가볍지 않은 내기를 한 모양이지. ㅋㅋ 그렇지 않다면 바로 눈앞에 펼쳐진 미묘한 풍경에 반해서 일꺼다..
일단 집안으로 들어서면 놀라운 일들을 경험하게 되는데, 우선 무지 많은 마당이 있음에 놀라게 된다.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찰 지경이니...
.......
도로변 예쁘게 가꾼 '꽃밭마당'과 탁 트인 '진입마당' (이 진입마당은 부채꼴 모양을 하고 있어서 가운데로 빨려들 것만 같은 상당한 깊이감을 갖고 있다.) 을 부드럽게 올라타고 나면 그 한가운데로 이 집의 중심공간인 '데크마당(필로티)' 이 어서 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이곳은 빛이며 바람이며 모든 실체들이 잠시 쉬었다 흘러가는 공간이다. 과히 집의 중심이다. 모든 길은 이곳에서 통하고 멈추니...
그 오른쪽으로 '놀이마당'이 숨어서 이쪽으로 오라 손짓하고 있다. 요란하고 시끄러운 소리에 살짝 엿보니 손야구로 땀에 젖어있는 애들로 가득하다. 몇해전 도로측 토목옹벽이 들어서서 뚜껑만 덮으면 저절로 돔야구장이 된다는 마당얘기에 철사로 지붕덮는 묘안을 설명해주고 자리를 뜬다.
다시 필로티 왼쪽 편으로 건물과 껴있는 '수(水)공간과 휴게데크'가 예쁘게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앞에 다른 건물로 막혀 있어서 상당히 아쉽지만 원래 앞 절경과 맞닿아 최고의 경관을 자랑했던 곳이다.
이제 건물을 관통하고 나니 '전시마당'과 그 옆에 펼쳐지는 '안마당'이 기다렸다는 듯 따뜻하게 맞이해준다. 이곳이 자궁속이란 걸 짐작케 해주는 이유가 있다. 주변에서 이곳을 전혀 볼 수 없기때문이다. 주변에 닫혀있고 꺼져있어서 정적이고 편안한 느낌, 즉 엄마의 품 그 자체다. 그 좌측 한 켠에 자리 잡은 거대한 규모의 '난⋅수석전시장'...그 옆에 나란히 붙어있는 '다목적실'이 숨어있다. 뻘건 방킬라이(사진)는 언제봐도 매혹적이다. 요가며 강연, 실내놀이를 위한 곳이다. 안마당 우측으로는 방갈로와 붙어있는 '살구마당', 그 뒤쪽으로 드넓은 '야외축구장'과 '모래마당'을 지나 드디어 우리의 목적지(?)인 '뽕나무숲 힐링마당'에 도착한다. 참으로 기나긴 여정이다. ㅎ
아참 빠진 게 하나 더 있는데 큰일낼 뻔 했다. 본동 '전망대'와 별동 '하늘마당'을 빠트렸으니 ... 옥상 전망대에 올라서보니 낙동강이 내려다보인다. 과히 대장관(Grand View)이다.
.......
이처럼 각 마당은 종류도 다양하고 규모도 상당하지만 이름값을 할 정도로 개성 또한 뚜렷하다.
건물은 전체 연면적(2개동 약 90평정도)에 비해 이 마당들과 건물이 자아내는 모습으로 상당히 웅장하다. 서로가 서로를 껴안으며 하나가 되기에 충분해 보이는데, 내부와 외부가 서로 관입되어 그 경계 또한 아주 모호하다. 1층에선 본동과 별동은 데크 필로티로 연계되어 있고 2층은 본동 거실과 별동 하늘마당이 서로 연결다리로 이어져 있다. 하나의 건축물인 셈이다. 또 층별로 놓고 보면 지하와 다락이 있어서 실제 4층 규모로 봐야하나 중층이 섞이면서 이 층의 개념 또한 모호해지게 되었다. 이 어수선하고 다소 산만해 보이는 이 모호한 공간에 하나의 질서를 부여하는데 바로 동선(動線)이다. 이 동선 이야기를 좀 해야 하는데 글이 길어지고 있음을 직감하고 있다. ㅎㅎ 아무튼 이 집에 순환동선(Ciculation)으로 스토리를 완성하고자 애쓴 기억이 또렷하다. 건물과 마당을 둘러싸고 이어주고 있는 다채롭고 흥미진진한 이 동선 이야기는 너무 길어서 다음 기회로 넘겨야할 듯하다. ㅎ
재미난 것은 이 집을 다녀간 사람들이 공통된 특징을 보인다는 것이다. 다들 한마디씩 하고 간다.
"건물과 마당에 둘러싸인 하얀 자태의 '사스타 데이지'와 정렬의 입술, '핫립 세이지'... 참으로 인상적입니다."
하나같이 마당이 예쁘다고 에둘러 말하고 있지 않은가. 이건 분명 설계자의 의도 (건물만 떼놓고 봐서는 안된다는.. ㅎ) 를 정확히 꿰뚫고 있음이다. 호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