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lank 여백,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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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시 신대리 단독주택 덧글 0 | 조회 1,103 | 2017-10-31 14:15:55
관리자  

 

 

 

(이어씀) 

"대륙에서 왔는가? 그대는...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얘기들로 가득하군. 전저후고라, 음~ 땅과 바람이 빚어냈다는 그 보검 얘기인가. 아! 마당에 깊숙이 꽂은 전착후관도 있군그래. 그런데 설마하니 이 두 개의 검으로 천하의 나를 상대하려는 건 아니겠지. 하하하~ 만일 그러하다면 가소롭기 짝이 없도다. 그 칼을 거두고 당장 물러가라!"

무림의 지존, 강호의 절대고수인 '남향' 의 포스다. 칼 한 자루로 태양에 맞서려는 풍수의 무모함을 꾸짖는다. 태양을 등지고 뜨거운 입김을 계속 뿜어내고 있는데 이번에는 정곡을 찌른다.

"그런데 풍수, 이거 하나 물어보자. 지관어른의 말씀대로라면 저기 '북향'도 불사하겠단 뜻인데, 과연 그러한가? "

북향이라... 때 아닌 북풍논쟁처럼 들리겠지만 남향은 절대고수답게 풍수의 약점을 건드려본다. 지금 향에 대한 풍수의 생각을 묻고 있는 것이다.

"나는 지관어른의 말씀에 개인적인 견해를 밝혔을 뿐 그분의 말씀을 대변하는 건 아니다. 그리고 '북향'의 참전 여부는 전적으로 그 자의 결정에 달린 문제지 여기서 내가 말할 사안은 아니라고 본다. 향도 중요하지만 오히려 땅이 얘기하는 소리를 듣지 못하는 너의 독선과 오만이 그저 안타까울 따름이다."

향만 고집하는 남향을 풍수가 꼬집어보는데 자칫 지관어른을 욕보이게 할 수도 있겠다 싶었는지 다소 조심스러워진다. 그런데 북향의 개입을 막고자하는 강한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이 애매한 답변에 풍수 편에 서있던 '동조'(東眺, 동측 조망)가 예민해지기 시작한다. 왜냐하면 북향의 등장은 바로 북조의 개입으로 이어져 무슨 수를 쓰더라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드디어 풍수와 동향을 등에 업은 동조가 포문을 연다.

"얼마 전 남향 너와 북조 사이에 벌어진 전투를 우린 모두 기억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 할 점은 남조가 없듯이 북향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게 진실이고 팩트다. 우리는 남향 너의 케케묵은 북향논쟁이나 듣고자 이곳에 온 게 아니다. 오히려 풍수 말처럼 땅의 흐름에 역행하고 그 순리를 거역하고 있는 너의 그 오만함을 일깨우고자 하는 것이다."

동조가 비교우위에 있는 남향을 향해 던지는 강력한 선전포고다. 여태 향에 관한한 비대칭전력의 동향 때문인지 아니면 풍수와의 강한 연대를 의식해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표현(오만함)에 있어서만큼은 격한 감정이 실렸다. 그런데 여기서 재밌는 것은 간단히 남조를 언급하면서 북향을 아예 지워버렸다는 점이다. 촌철살인이 따로 없다. 남남북녀처럼 '남은 향이고 북은 조망이다' 라고 북향논쟁을 잠재우고 있음이다.

"오호~ 동조 너였구나. 풍수를 앞세운 게 누군가 했더니. 이렇게 풍수와 손잡고 깨끗치 못하게시리 결국 흙먼지를 일으키고 마는구나. 그런데 북향이 없다?... 이건 저기 풍수가 들으면 아주 서운해 할 터인데. 하하~ 방금 내뱉은 그 북향이 없다는 말에 모든 책임을 질 수 있다면 기꺼이 받아주마 너의 칼도. 자~ 동조! 방금 내 앞에서 오만 운운하면서 내가 땅의 순리에 역행한다고도 했는데 이 무슨 얼토당토않은 궤변인가. 이 모욕적인 언행에는 반드시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어서 대답해보라. 이에 모순이 있거나 하면 결코 가만두지 않을 테니 각오하고~"

역행이니 거역이니 오만이라는 단어로 남향이 잔뜩 벼르고 있다. 그래서 북향논쟁으로 풍수를 옴짝달싹 못하게 했듯이 동조에게도 그 합당한 이유를 묻고 있다. 이제는 동조가 이 오만죄(?)의 성립요건을 합당한 이유로 설명해야 할 차례다.

"지금 우리는 이 땅에 들어설 건물배치에 대하여 오랜 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다. 그 배치에 있어서 자연 질서나 땅에 집중해야 한다는 점은 서로 지켜야 할 대원칙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크게 말한다. 이 대지는 서고동저(西高東低)의 지형으로 동쪽으로 탁 트인 조망을 자랑한다. 이게 이 땅, 즉 자연이 얘기하는 소리이다. 그래서 여기에 순응해서 집을 배치하라는 점이 바로 하늘의 명령이고 땅의 순리인 것이다. 이에 동쪽 조망을 무시하고 남쪽 향만을 고집하는 자는 땅을 배반하고 자연을 거스리는 것으로 판단해 천명으로 다스릴 것이다“

 

 

천명까지 거론하며 남향을 상대하는 동조가 거세게 몰아붙인다. 풍수와 더불어 현 대지가 놓인 자연 지형이나 그 현황에 순응하라는 명령을 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서고동저라는 설명까지는 좋았는데 이 땅의 현황을 두고 자연의 질서니 하늘의 명이니 하는 것은 다소 앞서나가는 듯하다. 이때를 놓칠세라 남향의 대반격이 이어진다. 땅의 형상을 떠들던 풍수나 트인 조망을 강요하는 동조에 따끔한 일침을 놓기 시작한다.

"땅의 순리가 마치 자연의 질서인양 떠들어대는 게 참으로 가관이 아니로다. 이 강호(건축)에서 자연이라 함은 태양을 칭한다는 사실을 정녕 모르고 하는 소린가? 동조 너도 풍수처럼 흙먼지를 일으켜 이 자연에 맞서려 하고 있군. 차라리 북조처럼 조망 하나만으로 나를 상대하려 했다면 어떠했을까. 물론 땅의 현황이나 지세도 고려해야할 대상이긴 하지. 그러나 우선순위를 두자면 자연의 질서를 따르는 게 첫 번째 아닌가. 그래서 자연에 순응한다는 건 바로 남향인 나를 따른다는 것과 맥을 같이한다. 동조! 동향이 이 싸움에 전면으로 나서지 않는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 보라“

남향은 한때 지축을 뒤흔드는 말발굽으로 강호를 주름잡았던 풍수나 주변 조망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던 옛 시인들 (동조, 서조, 북조)의 순진함을 지적하고 있다. 여기는 어설프게 동네 칼싸움이나 하자는 게 아닌 핵(향)의 유무를 놓고 벌이는 진정한 무림의 세계, 바로 건축공간임을 설파한다. 또 건축에서 자연에 순응한다는 건 바로 남향배치임을 되풀이하고도 있다.

이 남향배치 이론은 자연, 즉 태양에너지를 최대한 받아들여 화석연료를 줄이고 결국 자연에 임팩트를 최소화하는 방향으로 나아가 후대에 지속가능한 지구를 물려준다는 무서운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진정한 지축(Earth Axis)은 자연축(Natural Axis)을 말하는 것이고 자연이 곧 남향이라는 논리다.

 

 

남향은 또 이 무림의 세계에서 자연에 대한 다른 해석은 있을 수 없다고 설명한다. 향에 순응해 동서로 길쭉한 형태의 건물배치가 바로 자연에 순응하는 것이라고...
이 얘기를 과학적으로 뒷받침해준다는 기구를 하나 꺼내는데, 바로 지구본(地球本)이다. 이 지구본의 한반도 중심위도인 38도선에 주목해보라며 살짝 돌려본다.

이때 같은 위도상에 뜨거운 태양의 나라, 스페인 남부나 이태리 남부 시칠리아섬이 동일 선상에 나타난다.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는 순간이다. ㅎ 이 지구본은 겨울철에도 강한 세기의 태양에너지, 즉 상당량의 일사취득을 이야기한다. 분명 남향의 고집에는 지구과학적 근거가 충분해 보인다. 그래서 우리 한반도의 주택배치는 반드시 추운 겨울철을 기준해야 하는 이유가 설득력이 있다. 어쩌면 지상명령이다. 이 대목은 이전처럼 비약이 심한 글이라고 쉽게 치부해 그냥 넘기시면 아니 된다. 지구본을 꼭 꺼내서 돌려보시길. ㅎ (참고로 우리 한반도는 겨울철 대륙성 기후로 건조해서 아주 춥습니다. 이건 태양에너지, 즉 일사량이 작아서 추운 건 결코 아니라는 점입니다. 그래서 건물에서 열을 담아내는 축열 기능을 다룬지 오래됐죠. 아 지금 철근콘크리트의 장점을 하나 꺼내는 순간입니다.ㅎ)

그렇다면 이 동쪽으로 트인 조망은 어찌할 것인가. 사실 이 대지의 조망은 열려있다는 것 말고는 동쪽으로 그리 멋진 경관(대장관, Grand View)을 연출하고 있지는 못하다. 그래서 동조는 북조처럼 조망 하나만 들고 상대하기엔 역부족이라 판단했을 것이다. 결국 동조는 동향을 등에 업고 풍수와 손잡으며 건물이 동쪽으로 배치되길 간절히 원했으리라. 그런데 남향이 핵(향) 하나로 이 모든 노력들을 한방에 날려버리기 일보직전이다.

이 위태위태한 상황에서 풍수와 동조는 마지막 히든카드인 동선(動線, Circulation) 에 모든 기대를 걸어보는데... 동선은 때를 기다렸다는 듯 순식간에 모든 장수를 규합해 맨 앞에서 마이크를 잡는다.

"항상 그러하듯 남향과의 싸움은 불리하게 전개됩니다. 왜냐믄 핵을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처럼 힘의 균형이 깨어져 있기 때문이죠. 이걸 빨리 알아차려야 합니다. 힘으로 맞설 게 아니라 오히려 머리로 싸워야 한다고 보는데요. 그래서 이전 북조가 남향을 누룬 그 싸움에서 교훈을 읽어내야 합니다."

머리로 싸운다? ... 남향에 칼을 겨눈 많은 장수들 앞에서 동선은 똑같이 핵무장해서는 안 된다는 비장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이전 글(8/31)에서 남향을 물리치는 데에는 북측의 대장관(Grand View) 때문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었다. 그렇지만 북조만으로 남향이 순순히 물러났던 건 아니었다는 점 또한 그 글은 전한다. 계속되는 동선의 말이다.

"남향과 북조가 노렸던 실제 대상은 거실과 주방 그리고 각 방들로 이뤄진 실내 주생활 공간일 겁니다. 그런데 당시 그 싸움 때 형체도 없던 '프라이'가 남향과 북조 둘 다 중요한 걸 놓치고 있다고 지적해 줍니다. 바로 마당이라는 외부공간에 집중하라는 교훈이 있었죠."

지금 동선은 마당처럼 외부공간에 그 해답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런데 동조가 잠깐 껴든다.

"말씀 도중에 죄송한데요. 제가 한마디만... 지금 저렇게 남향이 큰 소리 치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누진의 도움으로 진입에 성공해 직접 마당을 살펴보았는데요. 분명 이 마당도 남향으로 기울어져 있었고 남향은 이 마당을 통하여 향은 물론 조망도 장악하고 있었습니다."

동조가 당시 현장 분위기를 재현해 그려내고 있다. 참고로 아래 스케치의 하단 별채는 제안사항이라 예산에 없는 건물이다. 이걸 빼놓고 보면 마당은 조망마저 장악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 순간 많은 장수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조망마저 빼앗긴다면 이 싸움은 명분도 없고 승산마저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동조의 걱정도 다 예상했다는 듯 이제 동선이 새로운 지략을 선보인다.

"그럴 겁니다. 남향이 벌써 마당을 장악했다면 더 힘들어 지는 건 불을 보듯 뻔한 일이지요. 그러나 남향이 마당을 차지했다면 이걸로 끝인 건가요? 혹시 우리가 새로운 마당을 만들어 내면 안 되는 걸까요? "

"...?..."

"자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남향이 장악한 마당은 향만 고려되게 하고 새로운 마당을 확보하여 이 조망을 입혀보는 겁니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일단 이 전투의 색깔을 향을 가진 마당과 조망을 가진 마당과의 싸움으로 바꿔놓고 시작해 보는 겁니다."

새로운 마당을 만들고 기존 마당과의 싸움이라... 전술핵(향)의 배치논란은 아닐 테고 이제 다들 동선의 입만 쳐다보고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마당 얘기는 근처에 있는 남향 들으라는 소리다. 왜냐면 이미 새로운 마당은 만들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동선의 부하 '누진'이 앞으로 나선다.

"그렇습니다. 저 남향이 승리에 도취되어 샴페인 두껑을 일찍 터트릴 때를 기다려 조용히 진입축을 하나 더 만들었습니다. 이 두 갈래로 자연스레 새로운 마당이 하나 더 보여 지게 되었습니다."

마당으로의 진입부인 누하계단에 손을 댄 것은 두 개 마당의 존재를 암시하는데 이는 본동과 별동의 진입체계를 분리하는 것과도 연관된다. 바로 동선의 분리가 공간의 분리로 이어지고 있음이 짐작된다.

"지금 조망마저 차지한 남향의 이 안마당을 쪼개기라도 한단 말인가요? 동선장군! "

동조할 수 없다는 동조의 말이다. ㅎ

"쪼갠다? 그것보다는 그 마당의 색깔을 뺏어오는 게 어떨까 합니다. 그건 바로 안마당에서 조망을 지우는 작업이죠."

여전히 못마땅해 하는 동조의 질문에도 안마당에서 조망을 지워 남향의 힘을 뺏으려는 동선의 전략은 조금씩 그 실체를 드러낸다. 이를 위해 건물의 새로운 배치가 불가피해 보인다. 즉, 안마당에서 조망을 지우는 작업은 건물로 막는 것 말고는 달리 방법이 없다. 조망을 가리는 이 계획은 남향도 어쩔 도리가 없을 듯한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각 실들의 창문이 향이 아니라 집의 중심인 마당으로 향하게 된다는 점입니다. 동쪽으로 마당이 있으면 그리로 각 실들이 배치될 수밖에 없겠죠. 그렇지 않을까요? 이제 향을 극복하기 위해 공간 즉, 마당에 사활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의 공간에 다른 마당을 낸다는 거랑 큰 마당을 잘라내는 거랑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그냥 도찐개찐이죠. 막연한 공간론보다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말씀해 주시지 않으시면 이 싸움은 이제 승산이 없어 보입니다.“

"자 다들 좀 더 들어보고 판단해 주시길 바랍니다. 이건 시작에 불과하죠. 우린 강호의 지존이라 불리는 남향을 극복하기 위해 또 다른 싸움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나 동선은 그동안 수많은 공간들을 서로 연계시켜 주고 원활한 소통에 그 주안점을 두려고 애써왔습니다. 넓게는 대지의 주변현황도 포함됩니다. 그래서 향이나 조망을 지배하고 있는 공간마저 맘대로 주물렀던 적이 있었죠."

남향 제거가 아니라 극복이라는 점은 접근방식이 다소 색다르다. 한때 공간을 지배했다는 사실은 아마 예전 드레스룸과 옷방의 차이처럼 가변적인 공간구성이 가능하도록 열어준 동선의 힘을 말하고자 함은 아닐까. 그런데...

"대지현황상 북쪽(도면상 우측)에 큰 텃밭이 있습니다. 다들 이 중요한 현황을 놓치고 있군요. 이 텃밭과의 연계를 말하고자 합니다. 저기 남향은 뜨거운 에너지를 갖고는 있지만 주변을 품어낼 뜨거운 가슴은 지니지 못했습니다. 이걸 노려야 합니다. 지금 여러분께선 서로 힘을 모아 남향을 극복할 방법을 찾고 계신데요. 이제 제가 갖고 있는 공간에 대한 해법부터 말씀드리며 천천히 나아가려 합니다."

《1차 '우진' (우각진입) 의 실패》

남향과 동조를 같이 고려해 봤지만 북측 텃밭과의 연계에는 실패함.
《2차 '누진'(누하진입)의 성공》

동향의 대약진과 텃밭과의 연계에 성공함.
이는 마당을 품을 줄 모르는 남향을 향한 동선의 비장한 먹선(?)이다. 그런데 무슨 얘길 꺼낼려는지 서론이 길다. 아무튼 이 동선의 공간론부터 들어보자.

"자~ 비빔밥을 하나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여기서 태양은 이 비빔밥에 꼭 필요한 고추장으로 보셔도 좋습니다. 그럼 조망은요? 그렇죠. 다양한 나물들입니다. 그런데 이 고추장이나 야채만으로는 집을 잘 비벼낼 순 없다고 봅니다. 경우에 따라 참기름처럼 다양한 조미료도 필요한 법... 그건 그렇고 그렇다면 마당은 대체 뭘 의미할까요?"

다들 어리둥절해있다. 비빔밥문화를 예로 들었는데 이게 적절한 비유인지 해서다. 그런데 다들 식빵을 들고 서있다. 왜냐 비유가 잼있으니까... 호호~

"돈가스나 스테이크 좋아하시죠... 나이프로 썰고 포크로 쿡쿡 찍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비빔밥은요. 비빔밥은 뭐가 필요할까요? "

"...?..."

"그렇습니다. 숟가락이 필요하죠. 삶을 담는 그릇처럼 대지가 밥그릇이라면 이 마당은 바로 숟가락입니다. 그런데 가끔 고추장(향)과 나물들(조망)이 잘 섞이지 않을 때도 있습니다. 이럴 때 필요한 게 있습니다. 젓가락이죠. 비빔밥은 경우에 따라 젓가락으로 비벼야 잘 섞입니다. 나이프와 포크로 재단하는 게 아닙니다. 이 얘기는 마당을 둘로 나눈다는 게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죠.“

놀라운 비유다. 공간론에 돈가스와 비빔밥을 갖다 붙이다니... 우리의 집은 비빔밥인데 숟가락이나 젓가락이 아닌 나이프나 포크로 마구 재단하니 제대로 잘 비벼질 리가 없지 않은가 라고 되묻고 있는 것 같다. (한단계 비약입니다.ㅎ)

“그럼 동선장군은 무슨 역할을 한단 말씀입니까? 머리로 상대하라 했으니 그럼 머리인가요.”

“궁금하세요? 호호~ 저는 각종 재료들을 비비는 그냥 ‘손‘일뿐입니다. 이제부터 숟가락으로 고추장을 비비고 젓가락으로는 나물들을 잘 섞어서 모두 하나로 비벼낼 생각입니다.”

“지금 이 얘기는 비빔밥처럼 이 집도 주변에 녹아들게 하시겠단 뜻인가요?”

이 말뜻을 이해하기 힘들어 하겠다 싶었는지 이제 동선이 스케치도면이며 준비한 영상을 꺼낸다.

과연 말대로 숟가락인 안마당으로 크게 비비고 가운데 껴있는 중정(안뜰)으로 주변을 구석구석 뒤섞어 하나로 비벼낸 모습이다. 누마루가 껴있는데 이건 마치 밥과 나물 위에 놓인 달걀 같기도 하다. 맨 위에 놓여 짜잔~ 하고 나타나 가장 먼저 뒤섞일 테니까... 한마디로 맛있어 보인다. ㅎ

 

 

... 드론 촬영 ㅎ
"이제 모든 창들은 향을 마주하는 게 아니라 마당을 향하도록 설계됩니다. 이 말인즉슨 다양한 각 재료들은 고추장(향)보다 숟가락이나 젓가락(마당)에 먼저 닿는다는 걸 뜻하기도 하죠. 다시 말해 향보다 마당 즉, 공간이 우선한다는 전략으로 판을 새로 짜야 합니다."

다들 지금 동선의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말에 한참을 머리 굴려본다. 어떤 이는 이 비유에 모순이라도 있는지 반대의견을 찾느라 분주하다. 그냥 비유 하나 들었을 뿐인데 반향이 크다. 오랫동안 생각하다가 다시 동조가 아까와는 다르게 부탁조로 말한다.

"우리는 저 남향이 내뿜는 뜨거운 에너지와 매운 맛(?)에 오랫동안 길들여져 왔습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주변과 섞여 잘 비벼져야 한다는 말씀으로도 들립니다. 동선장군의 말씀, 높이 사고 싶습니다. 특히 마지막 향보다 공간을 우선해야 한다는 말씀은 마당을 품지 못하는 남향에 대적하는 출사표 같습니다. 북측 텃밭과의 연계를 지적해 주시다니 싸움이 될 것 같습니다. 부디 선봉이 되어 우리의 생존을 지켜 주시길 바라 마지않겠습니다. “

이제 동선을 필두로 동향이며 동조, 그리고 풍수마저 뒤를 따른다. 여기에 텃밭의 작용으로 북조마저 눈치껏 합류한다. 새로운 조합이다. 짬뽕, 아니 비빔밥이다. 융합세력이라고 해야 되나 아무튼 기세가 대단하다.
드디어 이 동선이 남향과 정면으로 마주 대하는데... 주변현황을 읽어내지 못하는 남향의 오만과 독선에 동선이 일침을 놓는다.

“남향! ... 문제는 그대의 ‘뜨거운 에너지’ 가 아니라 공간을 품어낼 ‘뜨거운 가슴’ 이 없다는 게 문제로다.
안타깝고 또 안타깝도다. 너의 그 동서로 긴 오만한 자세로 인해 이 텃밭은 물론이고 그 주변을 담아내지 못하는 공간적 오류도 범하고 있구나. 풍수와 동조가 이야기하는 부분에 조금만 귀를 열어도 이런 앞뒤 막힌 공간은 나오지 않았으련만... 쯧쯧~ 다시 묻노니 진정 향(向)이 먼저란 말인가, 아니라면 공간(空間)인가?”

"흠~! 그칠만 하더니 또 시작이군 이젠 누구? 동전?... 차라리 고추장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게 좋지 않을까. 하하~ 그만큼 얘기했으면 알아들었다 봤는데 이젠 마당을 가지고 거들먹거리고 있군. 대체 이 마당이 뭣이길래 공간으로 바로 올라타려는 건가? "

동선과 남향이 맞붙었다. 볼만한 싸움이 계속 전개된다. 재밌는 사실은 이 불길이 '마당'으로 번지는 양상을 보인다.

(담번에 계속...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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