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Blank 여백,침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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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시 거산리 전원주택 덧글 0 | 조회 795 | 2018-07-12 18:23:06
관리자  

3m폭의 비좁고 다소 길어 보이는 경사로를 지나고 나면 비로소 거칠고 척박한 야생의 땅이 나를 반긴다. 남측으로 탁 트인 시야가 맨 먼저 다가온다


그런데 갑자기 조용하던 옆집 개들이 날 보더니 마구 짖어댄다. 순식간에 윗집 닭들도 서로 심하게 자리다툼을 하고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6.25난리는 난리도 아니라듯. 벌써 냄새 맡은 걸까. 내가 '늑대의 집'을 설계한다는 사실을.....


 

'개집과 닭장' , 이 두 공간은 항상 나를 흥분하게 한다.    음~~   (요거이 참 생각하면 할수록 묘하다.  아! '개집도 집인가' 요거.ㅎ  요즘은 개한테서 옷을 입히면 개옷이 되는데 그럼 '개옷은 옷인가' 이를 놓고 고민에 빠져있다.)


암튼 비좁고 가파르다. 회차할 공간조차 허락하지 않는 이 극한(?)의 땅, 쉽지만은 않다. 


깊숙한 이 곳에 대지 우측으로 친구네가 작년초에 서구스타일로 집짓어 살고 있다. 제대로 설계하지 못한 걸 크게 후회하고 있다는 이 친구분, 결국 나를 보더니 한마디 던진다.


"너무 예쁘지 않게 설계해요. 우리집 죽으니까."


" ? "


'예쁘지 않게~' 이건 잘 해석해야 한다.  혼자 튀지 말고 이 집과 조화롭게 해주길 바란단 뜻일 게다. 그런데 바로 옆집이라 이렇게 하면 둘 중에 하나는 분명 비교가 될텐데 살짝 걱정도 된다. 왜냐 차원이 다른 디자인이 보여질테니..호호~

반대로 다른 스타일로 지으면 어떨까.  아름다움의 기준은 없으니,  그래서 서구스타일이 아닌 정체성있는 우리의 집을 조심스레 구상해본다. 그래서 의도된 슬라이스로 살짝 비껴가보는데... 


"그나저나 저 위에 닭장냄새가 진동하네요. 저거 어쩌죠."


그렇다. 지금 건축주분과 이웃 친구분의 걱정은 곧 지어질 옆집보다 바로 윗집 닭장문제로 골머리를 썩고 있었다.  그래서 이런 생각도 해봤다.  그 닭장 바로 아래에 최고 시설의 계사를 지어 위쪽 닭들 배아파 죽게 만드는 햇볕정책을... 어쩌면 이 닭장이 바로 '신의 한수' 는  아닐런지.... 호호~ 


.....



"땅이 얘기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집은 땅이 그리는 무늬입니다."


" ? " 


첫 설계미팅때 건축주분들이 살고싶어하는 집이야기,  잘 듣지 않는다.  왜냐믄 어떤 고정된 틀안에 갇히기 쉽상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건 갑(?)의 주문을 들으면 분명 거역할 수 없지 않을까 해서다... 건방진 소리일 순 있으나  전문가로서의 견해를 먼저 말하는 게 오히려  맞다고 생각한다.  이건  병원가서 환자분이  '내 병이 이러하니 이렇게 고쳐주세요.' 라고 들으면 그 부위만 생각하는 큰 오류에 빠지는 이치와 같다고 보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건축주분들, 이 전문가적 시각에 목말라 있음을 너무나 잘 알고 있다.  ㅎㅎ  물론 그 다음엔 당연 아픈 곳(그리고 싶은 집)을 잘 들어야 한다.


이 '전문가적 견해' 는 상당히 중요하다.  왜냐믄 집은 나만 쓰고 버리는 일회용품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다. 기본 300~400년 이상 중력을 버티고 서 있는 집들을 보고 있노라면 결국 우리의 집들은  ' 팔리는 집'이 되어야 하기에 더욱 그렇다.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집이 팔리는 집의 구조다. 


결국 전문가적 견해와 건축주분들이 살고 싶은 공간,  이 서로 다른 두 견해차... 이 시각을 좁히는 일이 바로 설계라고 생각한다.  (물론 많은 건축주분들의 오랜 수고를 휴지조각으로 못쓰게 짓밟아버린 잔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땅들에 대한 나의 처방전들, 생각보다 무섭다. 엥?)


이번에도 이 거친 땅을보고 어김없이 처방전을 내놓는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약발이 잘 안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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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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